이번주에도 공부모임에 가지 못했다.
해야하는 일들과 겹쳐 시간을 빼기가 좀 애매해 못간지 좀 오래된 상태여서 부득이하게 모임을 주도하시는 분께 양해를 구해 다음수업 시작할 때 다시 합류하기로 했다. 살면서 이렇게 내가 원하고 바래왔던 수업시간을 누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모임의 시간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보통의 교육시스템에서는 그런 경험이 전무하고 대안학교에 다닐때도 표면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사람하나하나에 대입했을 때는 그러하지 못한 까닭이다. 배움이라는 공통분모안에서 자유함을 누린 기억은 희미하다.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이 모임의 선생님은 선생님으로 불리우지만 강사라는 위치를 만들지 않을뿐더러 사부나 가이드를 해주는 사람으로 여기지 말아달라한다. 도움을 주고 같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보다 배우는 사람이 주체가 되지 않으면 지속이 힘든 모임이고 여기서는 질문과 질문이 오간다. 보통의 수업풍경은 아니다. 물론 경직된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어서 굉장히 조용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모임을 이끄시는 분은 신념을 가지고 질문없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정적을 깬 것은 나중에 들어오신 어떤 여자분이었다. 왠만하면 나도 사람들의 질문들을 긍정적으로 듣고 수긍하는 편인데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말 기묘한 질문을 한 그녀의 대답에 진지함으로 응답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꽤나 인상깊었다. 역시나 발로 물을 톡 건드려보고 다리를 담가보고 손도 물에 적셔보고 그제서야 몸을 담글 수 있는 것처첨 내가 배우는 것에 퐁당 빠지기 위한 제일 작은 시도는 별거아닌 질문으로 시작된다. 수업시간에 저어기 한 구퉁이에서 찌질하게 쪼글아들어 있는 한 인물이 아니라, 주변인은 확 제쳐두고 나와 오롯이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저 앞의 가르침을 던지는 사람 혹은 내 앞의 책들을 남기고 간 죽은이들의 망령과 글을 쓴 살아있는 분들에게 내가 스스로 오롯이 내 생각만으로 담백하지만 점점 차올라가는 말들을 핑퐁처럼 주고받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이 질문이고 그게 배움같다. 배움이 지루하지 않게 되고 반짝반짝 터지는 폭죽처럼 삶에 기분좋은 자극이 되는 느낌을 느껴본지가 얼마만인가.
루돌프 슈타이너가 말했다. 인생은 7년 주기라는 리듬으로 성장한다고.
이 리듬은 한 아이가 탄생해 인간 존재로의 자아를 인식하고 내적인 삶을 자각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지점이다.
시작과 배움의 속도가 느린 나는 남들은 유년기에 거치는 의미를 찾는 궤도에이제야 들어앉은 것 같다. 내가 자퇴하고 내 인생을 꾸려간지 14년이 지났고, 난 내게 정직한 질문을 다시 하나씩 해볼 지점에 도달했다. 진짜 배우는 길이 뭔지 좀 더 경험하면 다른 길들을 가는 조금의 팁은 얹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이것은 일주일에 세시간 하는 공부모임에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려 쓰는 글이 절대 아니다. 하하하하하..